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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신 분석 상담 이론 - 1.Freud의 생애와 정신 분석학의 발달 과정
    카테고리 없음 2021. 12. 21. 22:59

    Sigmund Freud (1856 1939 ) Moravia Freiberg에서 출생했고 영국 런던에서 세상을 떠났다. 1937년 나치스가 오스트리아를 점령하여 어쩔 수 없이 영국으로 피난을 떠났으므로 출생 후 3년과 사망 전 3년을 제외한 거의 전 생애를 오스트리아의 수도 비엔나에서 살았다. 중등학교 ( Gymnasium ) 시절에는 7년 동안 계속 학급에서 수석을 할만큼 어렸을 때부터 우수한 학생이었으며 특히 Darwin의 과학연구의 이론에 매혹되었다고 한다. 프로이드가 3살 되는 해 그의 가족은 비엔나로 이주했는데 그해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 이 출판되었고 그 다음 해는 Gustav Fechner가 심리학을 과학의 한 분야로 정립했다. 이 두 인물은 당시의 젊은이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프로이드 역시 그들의 영향을 크게 받으며 지적으로 성장하였다. 프로이드는 1873년 비엔나 대학교에 입학하여 1881년 의사 자격을 획득하였다. 의과 대학 재학 기간 동안에 그는 생리학 실험실의 책임자이었고 19세기의 가장 위대한 생리학자의 한 사람이었던 Ernst Brucke 교수의 지도하에서 생리학을 공부하였다. 특히 1874년에 출판된 그의 저서에서 " 살아 있는 유기체는 화학과 물리학의 법칙이 적용되는 하나의 역동적 체제 "라는 그의 급진적인 견해에 프로이드는 매료되었다. 이 밖에도 심각한 영향을 끼친 학문이 물리학이다 19세기 중엽 독일의 위대한 물리학자 Hermann Von Helmholtz" 에너지 불변의 법칙 "을 밝혀냈다. 즉 에너지는 변형될 수는 있어도 소멸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프로이드는 이와 같은 역학의 법칙들을 인간의 성격 이론에도 적용시켜 하나의 역동 심리학으로서의 정신분석학을 창안하게 된 것이다. 처음엔 의학자체보다는 신경학의 연구에 깊은 관심을 갖고 1876년에서부터 15년간을 신경학자로서 연구에 전념하였다. 그러나, 생계 유지의 어려움과 유태인 배척 운동으로 대학에서 승진할 수 없다는 판단 아래 스승 Brucke의 권유를 받아들여 종합 병원의 인턴으로 일하게 되었다. 병원의 임상에서 환자들과의 접촉을 통해서 그는 신경질환을 심리학적 관점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자극을 받았다. 1885년에서부터 1년간 프로이드는 프랑스의 유명한 신경학자인 Jean Charcot와 함께 연구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그 당시 Charcotsms 최면적 암시에 의해서 히스테리를 치료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는데 후에 프로이드는 그의 임상 경험을 통하여 최면술에 의한 히스테리의 치료 효과에 대해서 회의를 갖게 되지만 Charcot와의 만남은 신경학자에서 정신 병리학지로 전환하게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1886년 비엔나로 돌아온 프로이드는 마르티나 베르나르와 결혼하여 세 딸과 두 아들을 두었는데 세 딸 중 안나 프로이드는 나중에 유명한 아동 정신 분석가가 되었다. 프로이드는 의사인 Joseph Breuer로부터 히스테리의 치료에 정화법이라는 새로운 방법이 효과적임을 알게 되었고 그와 공동 연구하여 " 히스테리에 대한 연구 " (1895)를 출판하였다. 그러나 그후 두 사람은 히스테리에 있어서 성적 요인의 중요성에 대한 견해 차이로 결별하게 되고 프로이드는 최면 요법, 정화법과는 다른 " 자유 연상법 "를 개발하여 치료에 적용하기 시작한다. 그는 성적 갈등이 히스테리의 원인이라는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다가 마침내 1896년 비엔나 의사회에서 탈퇴하였다. 1890년대에 프로이드는 환자들이 제공한 자료를 확인하기 위해 자아 분석을 시작하였고 이로 인해 자신의 내면에서 작용하는 역학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하여 환자들과 자기 자신의 분석으로부터 얻은 지식을 근거로 하여 정신 분석 이론의 기초를 이루는 개념들을 발전시켰으며 1900년대는 그의 이론에 관한 최초의 위대한 업적인 " 꿈의 해석 "을 출간하였다. 처음에는 정신 병리학회에서 무시되었으나 곧 의료계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들간에도 명성이 높아지게 되었고 그 이듬해 (1902)에는 비엔나 정신분석학회가, 1910년에는 국제정신분석학회가 설립되었고 이에 따라 많은 추종자들 ( Alfred Adler, Carl Jung, Stekel, Rank등등 )이 생겨났으며 이들은 후에 인간의 행동 동기로써 성적 충동을 주장하는 프로이드의 입장에 반대하여 별도로 자신들의 독자적인 정신분석학파를 형성하였다. 1923년경부터 그의 후두부와 턱에 암이 자라고 있어 그 전이를 막기 위해 33번이나 수술을 받고도 계속 일을 했다. 하루 18시간정도 일을 했는데 무려 24권의 책을 저술하였다. 일상 생활의 정신 병리학 (1904), 정신분석의 기원과 발달, 정신분석학 입문 (1917), 쾌감의 피안 (1920), 자아와 이드 (1923), 환상의 미래 (1927), 문명과 그 불만 (1929), 모세와 일신교 (1939)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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